고객센터

5일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

sans339
2025.08.13 00:41 6 0

본문

동두천치과 5일 국회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열린 '산림경영 논쟁 관련 토론회' 행사장은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 정민승 기자 숲을 관리하기 위해 숲 속에 만든 길, 임도(林道)는 산불 진화에 정말 도움이 되는 기반 시설일까. 아니면, 바람길이 돼 산불을 확산시키는 통로일까. 또 숲 가꾸기 같은 적극적인 산림 관리는 세금은 세금대로 먹고 재해를 키운다는 주장은 사실일까.대형 산불과 산사태 원인을 놓고 산림청과 환경단체, 학계, 임업계 사이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지난 5일 국회에서는 토론회 하나가 열렸다. 국회산불특별위원회가 주최하고 농림축산식품부가 주관한 “산림경영 ‘논쟁’ 관련 토론회”다. 지난달 29일 국무회의에서 산사태 등 산림 관련 정책이 논의됐고, 그 자리서 “재야의 고수 이야기도 들어보라”는 이재명 대통령의 언급에 따라 만들어진 행사였다. 급조된 자리라 그랬는지, 해묵은 논란이 새로운 이야기마냥 반복되기도 했지만, 국무회의에서 산림 문제가 공개적으로 논의됐던 덕분에 토론회장엔 입추의 여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 많은 사람이 모였다. 의원회관 세미나실에서 4시간 동안 진행된 토론회 내용을 세 차례에 나눠 쟁점별로 정리한다. 4시간 동안의 진행된 토론회에서 나온 참가자들의 전체 발언은 200자 원고지 250매 분량에 달한다.우선 토론은 두 사람의 대표 발제로 시작했다. 산림의 ‘절대 보존’을 주장하는 최병성 기후재난연구소장이 자신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산림 정책의 문제를 발표하고, 이어 ‘지속 가능한 산림경영과 활용’을 강조하는 박현 서울대 농림생물자원학부 객원교수가 조목조목 반박했다. 이후 7명의 전문가들이 두 발제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냈고, 마지막 방청석 발언으로 마무리됐다.쟁점 1 : 벌목과 임도 건설은 산사태를 유발한다 전문가들의 주장을 종합하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임도를 개설한 곳과 벌목을 한 곳에서도 산사태가 나긴 했지만, 모든 벌목지와 임도에서 산사태가 난 것은 아니다. 또 임도가 없거나 벌목을 하지 않은 곳에서도 산사태는 일어났다고 한다. 산사태의 주요 변수는 강우와 지형, 지질이고, 그 중에서눈 덮인 밤 그는 말없이 국경을 건넜다. 숨소리조차 삼켜야 했던 순간, 오직 하나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그 시간을 채웠다. 자유를 향해 내딛은 걸음, 엄마를 만나러 간다는 그 일은 탈출이 아니라 생존이었다. 수없이 넘어지고 다쳐가며 국경을 넘어선 그는 지금 또 다른 문턱 앞에 서 있다. 민족적 빛이 들이침과 동시에 시작된 분단과 이후 80년이라는 시간은 남한사람들의 차가운 시선과 무심한 외면을 키웠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돌아갈 수 없다’던 결심은 남한에서의 일상 속에서 가끔 무너진다. ‘같이 사는 사람’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아직도 먼 여정이 남았다. 우리는 묻는다. 과연 이 땅은 그들에게 진정한 안식처가 되어주고 있는가. 탈북은 단순히 국경을 넘는 행위가 아니었다. 그것은 정치, 경제, 사회, 가족 네 가지 고통이 얽힌 복합적 선택이었다. 믿기지 않는 과정을 돌고돌아 결국 강원도에 정착한 이들의 그 힘들었던 여정을 되짚었다. 2019년 16살, 앞서 탈북한 어머니 의지로 국경 넘어 발각 위기 넘기고 탈출 남겨진 가족에 걱정·죄책감 15살 소녀, 2008년 친구와 함께 자유 꿈꾸며 중국행 불안정한 신분 탓 정착 실패 후 2015년 남한으로 중국서 태어난 ‘탈북 어머니 아들’ 애매한 지위 문화·생활·언어 차이 고립감 느껴도 지원 사각지대 ■ 먼저 도착한 엄마가 부르다 함경북도 출신인 A(22) 씨는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16살 나이에 탈북해 중국과 동남아 국가를 거쳐 남한으로 입국했다. A씨가 5살 되던 해인 2007년 어머니가 먼저 탈북해 남한에 정착했다. 다행히도 A씨는 브로커를 통해 탈북한 어머니와 꾸준히 연락을 할 수 있었다. A씨는 “브로커가 북-중 국경과 가까운 양강도 어느 산으로 데려가 핸드폰을 통해 어머니와 통화 연결을 해줬다. 그렇게 쭉 연락을 이어왔지만 딱히 북한을 떠날 생각은 없었다. 너무 어렸을 때 어머니와 헤어져 기억이 잘 안 나고 아버지, 할머니와 사는 삶에 만족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A씨의 탈북은 급작스럽게 이뤄졌다. 평소 엄마와 통화연결을 해주던 브로커가 “오늘은 엄마가 국경 가까이에 와 있다”며 함께 가보자고 권했다. A씨는 단순히 엄마를 만나고 돌아올 줄 알았지만, 그 길은 이미 어머니가 계획한 A씨의 탈북 경로였다. 아버지와 할머니에게 제대로 인사도 하지 못한 채 국경을 넘게 된 것은 지금도 마음의 상처로 동두천치과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댓글쓰기

적용하기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순서대로 입력하세요.